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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상선언을 롯데몰 은평점 롯데시네마에서 조조로 봤습니다. 9시 30분 상영이었음에도 100여 명의 관객들이 함께 봤던 것 같습니다. 영화는 초반엔 그럭저럭 볼만 했습니다. 그런데 임시완이 죽은 후부터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영화가 뭘 보여주려고 이러지?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적중했습니다. 비상선언을 보고 느꼈던 모호한 감정을 정리하기 위한 영화 리뷰입니다.

 

비상선언 임시완 배우

 

재난영화

비행기 테러를 다룬 영화라는 정보 정도만 알고 영화를 선택했습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설리 SULLY :허드슨강의 기적>과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캡틴 필립스 Captain Phillips> 같은 재난영화를 재밌게 봤기에 기대도 컸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안 되어, 화면의 색감이 좀 어둡다는 인상을 주더군요. 최근 일부 한국 영화에서 대사가 잘 안 들리는 기술적 문제가 있었기에 조금 불안해졌습니다. '그래, 극장 영사기가 오래됐나 보지... '라고 애써 스스로를 위로하며 계속 보았습니다. 

그런데, 영화 초반부터, '나 테러범 입니다.'라고 행동하는 임시완이 자기가 살포한 생화학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자, 그때 또다시 의문이 들었습니다.

영화가 뭘 보여주려고 그러지?
진짜 보여주고 싶은 게 따로 있는 건가? 

 

한재림 감독(맨 오른쪽)

 

대부분의 재난 영화는 재난 상황에 집중합니다. <설리> 같은 영화는 재난 상황과 법정을 오가며 재난 상황을 재구성하는 방식을 택하긴 하지만, <캡틴 필립스>와 같은 영화는 실시간으로 재난에 대처하는 인물들의 긴박함을 주로 다룹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비상선언>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의도적으로 피해갔다는 게 더 적확할 듯싶네요. 영화 대사 중에, 하필이면 그때 그 장소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피해를 받아야만 했다는 식의 대사가 나옵니다. 이런 것을 보면, 감독은 어떻게든 '테러'를 '재난'으로 정의하려 하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재난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며, 악당과 영웅이라는 기존 선악구도를 깨고, '테러' 상황에 직면한 선량한 사람들의 대처방식에 집중합니다.

2001년 911테러부터 최근 미국의 총기난사 사건들처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적인 범죄, 테러 행위들이 일상화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한 명의 악인에 집중해서 그 악을 처단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때, 그 장소에 있는 사람들에겐 당장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을 테니까요. 누가 했든, 왜 그랬든, 그건 중요하지 않고 당장 이 위기를 극복하는 게 사느냐 죽느냐를 결정짓는 절박한 상황인 겁니다.

 

이병헌 배우

 

 

영화 후반부에 감독이 보여주려던 것에 공감이 안 됐던 이유

영화는 범인을 일찍 죽이고나서, 재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생존을 위한 노력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감독이 보여주고 있는 생존을 위한 노력들에 전혀 공감이 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송강호 배우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재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노력이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보다는 국토부 장관 전도현과 경찰관 송강호를 필두로 한 땅 위의 사람들의 노력이 부각되어 묘사됩니다. 그에 더해, 비행기가 미국에서 착륙 금지를 당하고, 회항해 오는 시점에서 감독은 관객의 관심선을 다른 방향으로 유도합니다.

재난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구해야 할까?  vs  소수의 희생으로 더 큰 재난을 막아야 할까?

 

비행기 안에서 재난상황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딸과 함께 탄 파일럿 출신 이병헌 외에 도드라게 묘사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저 충격받고, 혼란스러워하는 군중들로만 묘사됩니다. 비즈니스석의 한 남성이 <부산행>의 진상남 역할을 한 김의석 배우의 역할을 어설프게 모방하는 정도만 보일 뿐입니다. 여고생들의 존재는 가슴 아픈 세월호를 떠올리게 하려는 장치처럼 보여 더욱 께름칙했습니다.(소재주의로만 소비되는 것 같은 안타까움)

그런데, 미국에서 착륙을 거부당한 후 일본으로 방향을 틀지만, 일본에서도 착륙을 거부당하고 일본 자위대에 공격까지 받는 상황에 이르면, 영화의 관심선은 정체모를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소수의 희생을 감수해야한다는 쪽으로 급선회합니다. 뉴스에서 전하는 착륙 반대 시위가 묘사되는 게 이 시점이죠. 이 지점에서 비행기를 탄 사람들은 가족들을 위해 자신들만 죽는 것이 옳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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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결론을 내리는 과정도 그냥 퉁치는 느낌입니다. 사람들 사이의 토론을 벌이는 장면 따위는 없습니다. 다만,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을 것을 예상한 사람들의 체념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때, 송강호가 비행기에 탄 아내를 위해, 자신의 몸에 바이러스를 주입하고 백신을 맞아 바이러스가 치유 가능한 것임을 증명하려 합니다. 송강호의 살신성인은 결국 국토부 장관의 비행기 착륙 결정의 중요한 근거가 되고, 결국 비행기는 착륙할 수 있게 됩니다.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정의로운가?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 이 문제가 후반부의 중요한 쟁점입니다. 비행기 착륙을 반대하는 시민들의 데모와 그 모습을 중계하는 뉴스 보도들이 반복적으로 재생되고, 생존자들이 가족들에게 보내는 끊어지는 영상편지들은 분명, 신파를 위한 장치였을 것입니다. 그 장치가 몇몇 관객들 코를 훌쩍이게 한 것도 사실입니다. 주위에서 여자 관객들이 훌쩍이는 소리를 직접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도저히 감독의 의도 너머의 정서적 공감까지는 가지 못하겠더군요.  

또 의문점이 생긴 것은, 영화의 관심선이 비행기를 착륙시키냐 마냐의 문제로 옮겨갈 때즈음엔, 바이러스로 죽는 사람을 안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영화적 생략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 수포가 생기는 정도로만 묘사됩니다. 비행기 조종사인 김남길도 피를 토하지만, 결국 끝까지 살아남아 이병헌과의 전사를 풀어내기까지 합니다. 임시완은 죽었는데, 왜 다른 사람들은 수포만 생기고 왜 죽지 않는 걸까요? 

바이러스의 발현 시점이 제각각이란 것,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죽지 않는다는 것이 이상했습니다. 영화의 설정에 설득이 안 된 것이죠. 결국,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재난 상황을 극복하려는 사람들의 노력에 있지 않고, 소수의 희생으로 재난을 마감할 것인가, 그들을 인도주의적으로 도와야 할 것인가 하는 윤리적 문제를 보여주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윤리실험같은 상황이 감독의 윤리적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이 아닌, 극작 기술로서 머리에서 쥐어 짜낸 것에 가깝다는 게 제 인상입니다. 반전을 위한 반전이 필요했던 것이죠. 그래서, 감동이 덜하고, 영화적 쾌감도 없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감독의 선택은 존중하지만, 방식엔 결코 동의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의견

검색을 해보니,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비상선언> 리뷰 영상을 제작사 측에서 내려달라고 요청했다는 게 이슈가 되었더군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다는 이유였다지만, 아무래도 관객들은 영화의 만듦새에 대한 적나라한 지적이 불쾌했거나, 흥행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거 아니냐고 생각해서 더 분해하는 듯하더군요. 

 

이동진 평론가의 의견

 

집단에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잘못이 없는 개인이 희생해야 한다. 
스스로 퇴장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을 아름다운 희생이나 감동으로 포장.

이걸 관객들이 감동으로 받아들일까?

 

이상한 사회드라마로 느낀 이동진 평론가의 의견

 

후반부에 너무 많은 반전이 들어감.
반전을 넣는 과정에서 감동의 포인트로 생각한 부분이

과연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가?
과연 이것이 감동인가?
사람마다 느끼는 것이 다를 수 있겠지만,
평론가 개인의 입장에서 이상한 사회 드라마로 느껴진다.

 

결국 사람들 보는 눈은 똑같구나 싶네요. 이동진 씨도 영화평론가로서의 위치도 있고, 제작사, 배우들과의 관계도 있으니 순화해서 소신껏 자기 의견을 낸것 같더군요... 저는 이동진 씨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가 됩니다. 

 

이동진 평론가의 <비상선언> 리뷰 영상

 

아래엔 이동진 평론가가 추천한 비행기 소재 재난영화들이 있습니다. 비상선언과 비교해 보면 좋겠네요.

 

비행기 소재 재난영화 추천

 

모호했던 생각들을 거칠게나마 적어보니 선명해 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좋은 영화는 굳이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많은 말들이 따라올 것 같군요.

이건 순전히 제 개인적인 감상평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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